새벽에 일어나 거실 전면인 서가의 유사(사이비)역사책 열댓 권을 뽑아서 종이재활용장으로 배출했다. 십여 년 전에 읽었을 때는 읽는 내내 자긍심이 흘러넘쳤었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책 한 권이 읽은 놈이 제일 똑똑하다는 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여기저기에다가 열변을 토하고 다녔었다. 몸서리칠 정도로 후회스럽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그게 국수주의와 가짜 민족주의에 경도된 유사(사이비)역사관이란 걸 알았을 때에 바로 버렸어야 했는데, 돈이 아까워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늘 새벽에 일찍 깨서 정기구독하는 잡지-스켑틱 코리아-를 펼쳤는데 그것에 유사(사이비)역사의 병폐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었다. 또다시 부끄러움이 밀려와서 해 뜨지 않은 새벽이었지만 확 뽑아서 재활용장으로 갖다 버리다시피 했다.
동창회의 계절이어서 여기저기서 동창회 안내 문자와 전화가 왔다. 한동안 뜸한 친구들과 연을 맺으면 교직생활 하는데 나쁠 것 같지 않아서 열심히 다녔었다. 열심히 다닌 만큼 친해지지도 않았고 교직생활에 보탬도 되지 않았다. 어차피 교직생활의 난관은 내가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데, 굳이 내키지 않는 동창회에 나가서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고, 분위기를 흐리지 않게 하려고 내 뜻과 어긋난 소리에 비위도 맞추는 게 싫어서 최대한 회피한다.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애매하게 친한 분위기가 싫기도 했다. 그러면서 여러 동창회에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친한 동창들과는 수시로 연락하고 만나며 추억을 나누고 근황을 주고받는 걸로 만족한다.
육묘장 하는 처형에게 묘목을 얻어다가 사택 옆에 있는 텃밭에다가 심었다. 처형이 내가 요구한 모종보다 많이 주었는데도 텃밭이 생각보다 커서 겨우 몇 포기를 남겨서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다. 일부러 딸기 모종 한 판을 달라고 해서, 반 판은 병설유치원생이 두 명이어서 물 주며 길러보라고 두 개의 화분에 심었고 나머지는 학생들이 오며 가며 보라고 비어 있는 화단에 심었다. 반 판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려고 남겼다.
어릴 적에 농사를 지어봐서 그것의 고단함을 알고, 제대로 농사짓는 방법도 알아서 그것이 어설픈 교직원에게 이런저런 간섭하는 게 싫어서 되도록이면 수확을 위한 학교 텃밭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텃밭 활용을 물으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도록 권장한다. 그것도 싫어하는 기색이면 봄에 고구마 심어서 가을에 수확량과는 관계없는 캐는 즐거움을 누리자고 권유한다. 나는 그것마저도 싫다면 교감일기에서 주장했듯이 꽃씨를 뿌리고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자고 한다. 예전의 어떤 학교에서 그렇게 말했더니 요즘 애들은 벌과 나비를 무서워해서 민원 생긴다며 정색해서 반대하는 교직원도 있었다. 평론하진 않겠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의 생태교육용 텃밭이 별도로 있고, 사택 옆의 텃밭은 교직원이 억지로 쭈욱 관리를 해 왔다며 올해는 내가 관리하기를 강하게 바랐다. 한 고랑만 하겠다고 했더니 재차 정말로 한 고랑만 할 것이냐고 압박해서 오늘 빈 텃밭을 채웠다. 학교 예산은 아예 투입하지 않겠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밭갈이와 거름 주기, 호미 등의 농기구와 농작물 고정 지주 등을 오롯이 내가 해결할 수 없다. 나는 모종 얻어다가 심고 관리하여 채소와 채소 열매가 필요한 교직원과 학생에게 수확해 가라고 알릴 것이다. 일부러 호기심을 갖게끔 보라고추, 오이, 복수박, 참외, 방울토마토, 다양한 상추, 가지, 딸기 등을 심었다. 물론 나도 모종 값 정도는 따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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